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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매경데스크] '반값 등록금'에 발묶인 대학
- 이름
- 관리자
- 등록일
- 2019-09-23
https://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19/09/754269/
10년 넘게 동결된 서비스 요금이 얼마나 될까. 택시요금, 이·미용료, 학원비, 점심값 등 줄줄이 오른 요금 사례를 손꼽는 게 훨씬 빠를 것이다. 사실 물가상승률을 적절히 반영하는 게 상식적인 요금 책정이다. 그래야 실제로 받는 서비스 용역의 대가가 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11년째 동결인 대학 등록금은 이런 상식에서 예외다. 2009년부터 '반값 등록금' 프레임에 걸려 있는 대학 등록금은 시장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이 적용되지 않는 정치 영역의 함정에 빠져 있다.
최근 만난 사립대 교수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10여 년 전엔 서울시립대 교수 연봉이 주요 사립대의 3분의 2 정도였는데 이제는 비슷하거나 역전됐다는 것이다. 서울시립대 교수 연봉은 서울시 공무원의 임금 인상률을 적용받아 매년 2~3%씩 오른 반면 사립대는 제자리걸음을 거듭한 탓이다.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한 사립대 교수는 "가장 저렴한 수준의 미국 주립대 등록금보다 한국 사립대 등록금이 더 낮을 것"이라며 "대학 등록금 결정은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등록금 동결의 수혜자는 표면적으로 학생과 학부모다. 가계 부담을 덜 수 있으니 이들이 반대할 게 없다. 하지만 등록금 동결은 중장기적으로 대학생 본인과 국가 모두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정책의 실패'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대학 교육 서비스의 이용자인 대학생은 학교에서 수혈하는 지식을 사회 진출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대학 교육의 질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 IMD 평가에서 대학 교육 경쟁력은 2011년 39위에서 2019년 55위로 추락했다. 미국과 중국 대학들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차세대 핵심 학문을 가르치느라 야단법석인데 한국 대학들은 흉내만 내기도 벅차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변신을 거듭해도 모자랄 대학들이 죽은 지식을 제공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보니 학생들 경쟁력이 올라갈 리 없다. 이들을 공급받는 국내 기업들도 딱한 처지다.
국내 대학들의 등록금·수강료 수입(2017년 기준)은 물가 인상분까지 반영하면 6년 전보다 1조5000억원이 감소했다고 한다. 이는 대학들의 시설비·연구비 축소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사립대의 시설비 지출은 2010년 2조1000억원에서 2017년 1조5000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제대로 된 투자 없이 대학 교육의 경쟁력 제고를 바라는 건 뻔뻔한 일이다.
한 사립대 총장은 "요즘 사립대들은 빈곤의 악순환에 허덕이고 있다"면서 "교수들 연봉을 못 올려주는데 유능한 분을 모셔올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많은 유보금을 쌓아둔 사립대학들이 엄살을 부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는 비상자금을 펑펑 쓰기 시작하면 오래 버틸 재간이 없다"고 대학들은 항변한다.
사실 대학들의 등록금 책정권은 '고등교육법'에 보장돼 있다.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의 1.5배 한도에서 등록금심의위원회를 통한 등록금 인상이 가능하다. 문제는 교육당국이 '국가장학금Ⅱ 유형 제도'를 통해 대학의 등록금 인상을 사실상 틀어쥐고 있다는 점이다. 등록금을 동결하지 않은 대학은 국가장학금Ⅱ나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지원하는 데 제약을 받는다. 포퓰리즘 정책의 폐해를 알면서도 대학은 교육부 눈치를 보며 큰소리를 못 내고 있다.
교육부는 이런 기조를 바꿀 기미가 없다. 국내 대학의 등록금이 여전히 세계적으로 높은 편인 데다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키울 수 없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운다. 하지만 대학의 침몰은 국가에 치명타가 될 게 자명하다. 사람의 힘만으로 경제강국 대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의 대학 경쟁력 추락을 외면하는 건 교육당국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황인혁 사회부장]
[매경데스크] '반값 등록금'에 발묶인 대학
기사입력 2019-09-23 00:07
10년 넘게 동결된 서비스 요금이 얼마나 될까. 택시요금, 이·미용료, 학원비, 점심값 등 줄줄이 오른 요금 사례를 손꼽는 게 훨씬 빠를 것이다. 사실 물가상승률을 적절히 반영하는 게 상식적인 요금 책정이다. 그래야 실제로 받는 서비스 용역의 대가가 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11년째 동결인 대학 등록금은 이런 상식에서 예외다. 2009년부터 '반값 등록금' 프레임에 걸려 있는 대학 등록금은 시장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이 적용되지 않는 정치 영역의 함정에 빠져 있다.최근 만난 사립대 교수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10여 년 전엔 서울시립대 교수 연봉이 주요 사립대의 3분의 2 정도였는데 이제는 비슷하거나 역전됐다는 것이다. 서울시립대 교수 연봉은 서울시 공무원의 임금 인상률을 적용받아 매년 2~3%씩 오른 반면 사립대는 제자리걸음을 거듭한 탓이다.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한 사립대 교수는 "가장 저렴한 수준의 미국 주립대 등록금보다 한국 사립대 등록금이 더 낮을 것"이라며 "대학 등록금 결정은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등록금 동결의 수혜자는 표면적으로 학생과 학부모다. 가계 부담을 덜 수 있으니 이들이 반대할 게 없다. 하지만 등록금 동결은 중장기적으로 대학생 본인과 국가 모두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정책의 실패'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대학 교육 서비스의 이용자인 대학생은 학교에서 수혈하는 지식을 사회 진출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대학 교육의 질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 IMD 평가에서 대학 교육 경쟁력은 2011년 39위에서 2019년 55위로 추락했다. 미국과 중국 대학들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차세대 핵심 학문을 가르치느라 야단법석인데 한국 대학들은 흉내만 내기도 벅차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변신을 거듭해도 모자랄 대학들이 죽은 지식을 제공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보니 학생들 경쟁력이 올라갈 리 없다. 이들을 공급받는 국내 기업들도 딱한 처지다.
국내 대학들의 등록금·수강료 수입(2017년 기준)은 물가 인상분까지 반영하면 6년 전보다 1조5000억원이 감소했다고 한다. 이는 대학들의 시설비·연구비 축소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사립대의 시설비 지출은 2010년 2조1000억원에서 2017년 1조5000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제대로 된 투자 없이 대학 교육의 경쟁력 제고를 바라는 건 뻔뻔한 일이다.
한 사립대 총장은 "요즘 사립대들은 빈곤의 악순환에 허덕이고 있다"면서 "교수들 연봉을 못 올려주는데 유능한 분을 모셔올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많은 유보금을 쌓아둔 사립대학들이 엄살을 부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는 비상자금을 펑펑 쓰기 시작하면 오래 버틸 재간이 없다"고 대학들은 항변한다.
사실 대학들의 등록금 책정권은 '고등교육법'에 보장돼 있다.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의 1.5배 한도에서 등록금심의위원회를 통한 등록금 인상이 가능하다. 문제는 교육당국이 '국가장학금Ⅱ 유형 제도'를 통해 대학의 등록금 인상을 사실상 틀어쥐고 있다는 점이다. 등록금을 동결하지 않은 대학은 국가장학금Ⅱ나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지원하는 데 제약을 받는다. 포퓰리즘 정책의 폐해를 알면서도 대학은 교육부 눈치를 보며 큰소리를 못 내고 있다.
교육부는 이런 기조를 바꿀 기미가 없다. 국내 대학의 등록금이 여전히 세계적으로 높은 편인 데다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키울 수 없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운다. 하지만 대학의 침몰은 국가에 치명타가 될 게 자명하다. 사람의 힘만으로 경제강국 대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의 대학 경쟁력 추락을 외면하는 건 교육당국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황인혁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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